그 음악을 듣던 자동차 안에서의 시간을 기억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아침이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 한 시간을 깨워도 두 시간을 깨워도 아이는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처음엔 잘 몰랐다. 가기 싫어서 그런다는 걸. 코로나를 겪으며 방에서 원격수업을 듣던 시간이 2년을 넘겼으니 그냥 학교에 가기 싫은 게 너무 당연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내 아이가 언제나 조금씩 늦됐었다는 걸 애써 환기하며 모든 불안한 감정들을 일반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봄, 아이는 정말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그리고 다니기 싫다고 했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자퇴. 자퇴라는 건 대학생들이나 쉽게 내뱉는 말인 줄 알았다. 그게 그렇게 아무나 하는 건가? 쉽게 그러기 어려울 텐데. 그렇게 나를 달랬지만 아이는 정말 다니기 힘들어했다. 이번 학기만 또 다음 학기만. 그렇게 대략 삼 년만 다니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나올 텐데. 중졸은 너무 하잖아? 그럼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기는 할 거니? 아니. 공부가 재미가 없어. 아 재미? 누가 공부를 재미나 취미로 해? 그냥 하는 거지.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졸업장 없이 백세시대를 살아? 니가 너무 어려서 아직 뭘 모르는 거야. 그래도 다니기 싫어.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수업 시간에 도저히 못 앉아 있겠어.
아이는 밤을 꼴딱꼴딱 새웠다. 밤을 새워 게임을 하고 또 했다. 그러면 학교에 가서 잘 수 있으니까 시간이 아주 빨리 간다고 했다. 어떤 날은 단 일분도 눈을 붙이지 않고 학교에 갔다. 그런 날 집에 오면 하루가 아주 잘 가서 정말 견디기 쉬웠다고 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학교라는 게 누군가에겐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잡고 만나 뵈었다. 선생님 복은 있는 녀석. 담임쌤은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하셨다. 자기 눈에는 정말 멋지고 착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인데 공부에만은 흥미가 없어 보여서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다. 정말 아이가 공부할 마음만 있다면 따로 보충 수업을 붙들고 해 줄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이 아이가 자기 자신이 정말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멋진 아이인데 안타까워요. 그냥 힘들 때는 쉬게 하세요. 체험 학습 내서 같이 여행도 하시고 하세요. 학교에서 너무 힘들어 보여요....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도 선생님을 가끔 생각한다. 아들이 다니던 일반학교 근처를 지날 때마다. 처음에 아들이 전학 가고 얼마 안 되었을 때까지는 그 학교 근처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다. 그런데 요새는 괜찮다. 요새는 정말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녀석이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하니까 그 학교 곁을 지나다가 힐끗 바라봐도 가슴이 아리지 않다. 신기하다.
니가 있는 곳, 니가 좋아하는 곳이 결국 내가 사랑하는 곳이야.
처음엔 배구학교엘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 명문 배구 학교에 컨택해서 아이 키가 190이 넘는다고 말씀드리고 감독님을 따로 찾아뵈었다. 상담을 하고 아이의 신장이나 체격면에서 나름 어드밴티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몇 주간 아이를 방과 후에 데리고 다니면서 연습을 시켜보기로 감독님과 합의하였다. 아이를 학교 정문으로 들여보내고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연습이 끝나면 아이와 만나 집에 왔다. 무지막지한 연습 또 연습이라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체력단련을 하고 아이가 내 차에 타는 순간부터 배구부 아이들은 진짜 팀 연습을 한다. 아이는 일단 체력단련만 같이 하는 거였다. 어떤 날은 목에 타이어를 매고 운동장을 돌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데도 아이는 거기로 전학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만 아니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감독님께서 지정해주신 날짜까지 연습을 같이 하고 그 학교의 팀이 전국 대회에 나가는 기간엔 연습을 쉬기로 했었다. 그때, 아이한테 정말 다시 물어봤었다. 그렇게 팀끼리 합숙하는 숙소에서 같이 살면서 힘들지 않겠냐, 집에서 아침마다 엄마가 라이드를 해주면 어떻겠냐, 잠은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않을까 등등. 아이는 단연코 No라고 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도 그리고 집도 다 떠나 있고 싶다는 것이다. 그 아침, 그날도 학교에 늦은 아이를 교문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영화 <클로져>에 나왔던 곡.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 간간이 들었던 곡이고 알던 노래였다. 그렇지만 그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기 위해 잠시 정차해 있던 나는 데미안 라이즈의 읊조리는 듯한 보컬에 그냥 우수수 무너져 내린다.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울음이 폭포처럼 터지고 꺼이꺼이 운다. 결국 네가 나를 이렇게 떠나가고 나는 너를 보내야 하는구나.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지만 그게 그렇게나 빨리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떻게 그냥 내 품 속의 아가 같던 아이가 이렇게나 커버려서 전혀 새로운 낯선 세계로 들어가려 하는 건지 모든 게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부모는 자식한테서 마음을 떼놓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서둘러서 자기 갈 길로 간다. 어쩔 수가 없다. 저 구절은 마치 내 마음에 대한 끝없는 변주 같다. 누구라고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서 매둘 수가 있을까. 함께 놀이터에서 흙장난하고 놀던 날들은 언제나 나의 기억 속에 있고 , 소중한 기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누구에게나 존재의 버팀목이다.
지금은 데미안 라이즈의 노래를 들어도 역시나 그 때처럼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다. 아이는 새로 적응한 학교에서 정말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배구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아이의 즐거움이 곧 부모의 즐거움이고 아이의 행복이 곧 부모의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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