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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단 한 번의 사랑

by 푸른수첩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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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이 있다. 누구를 다시 만나든, 어떤 새로운 사랑을 하든 결국 거기로 귀속되는 그런.

 

1.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내용

 

  황달에 걸렸던 소년 미하엘(데이비드 크로스)은 외출했다가 길에서 구토를 하고  30대 여성 한나(케이트 윈슬렛)의 도움을 받는다. 몸이 회복된 후 꽃을 들고 감사 인사를 하러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가 미하엘은 스타킹을 신는 그녀를 훔쳐보다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그날 이후 미하엘은 학교가 끝난 후에 항상 한나의 집으로 찾아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나는 미하엘이 자기에게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미하엘의 책 읽어주기가 끝나면 그들은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눈 뒤 같이 누워있는 시간을 즐긴다. 이것은 그들의 만남에 루틴이 되고 미하엘은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사랑에 담대하게 빠져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8년 후 미하엘은 법대생이 되어 재판에 참관하게 되는데 거기서 나치 전범의 피의자로 앉아 있는 한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나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여성 수감자들을 감독했던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다른 감독관들은 자신들의 죄를 부인하면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보고서를 한나가 작성했다고 한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필체를 대조해보기 위해 글을 써보라는 재판장 앞에서 한나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만다. 글을 모르는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미하엘은 그제야 그녀가 문맹이었음을 깨닫는다. 한나가 떠나야 했던 이유도 근무 실적이 좋아서 서류를 다루는 부서로 이동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나에게는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끝끝내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치부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비밀이고 마지막 자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나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미하엘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잎을 보내고 한나는 테이프와 책을 대조하면서 글을 익힌다. 2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오는 한나를 위해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는 미하엘. 둘은 정말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일주일 뒤에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는 한나와 미하엘. 그러나 한나는 석방 당일 아침 자살한다. 한나와의 만남 이후 어떤 사랑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미하엘은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데리고 한나의 무덤으로 향하고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의 채비를 한다. 

 

2.  감상평

 

  정말로 여운이 오래 가는 영화였다. 한나를 향한 미하엘의 사랑은 그의 평생을 걸쳐 관통한다. 영화 초반에 미하엘과 함께 밤을 보낸 어떤  여자는 그가 결코 한 여자에게 머무를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알아챈다. 미하엘은 결혼도 했고 딸도 있었지만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으며 결코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시작되었다가 끝나고 또다시 시작되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이는 대체할 수 없는 원형적인 사랑을 앓는 것 같다. 그럴 때 새로 시작하는 각개의 사랑은 모두 다 그 사랑을 향한 사랑이 된다. 그런 사랑을 일찍 만난 사람은 언제나 처음의 그 사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하엘이 감옥에서 출소한 한나와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으려 했을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마음속엔 한나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한나가 저지른 잘못과 무지에 대한 원망이 함께 있었던 것 같다. 한나의 문맹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 무지함과 무식으로 인해 지은 죄까지 다 용서할 수는 없는 법의학도로서의 어떤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한나에게 책과 녹음테이프를 보냈지만 한나의 편지에 미하엘이 끝끝내 답장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미하엘이 한나를 결코 잊을 수 없고 그 사랑을 놓을 수 없었다는 걸 관객은 알 수 있다. 어떤 여자를 만나든 그에게는 한나에 대한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현실의 사랑을 완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첫번째 사랑이 남긴 상처가 너무 깊어서인 것이다.  단 한 번의 사랑만으로 자기 생의 자잘한 디테일을 다 덮어버리는 부류의 영혼들이 있다.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그 지점의 그 사랑의 순간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 그들이 평생에 걸쳐 하는 모든 사랑은 그 하나의 사랑을 향한 사랑이다. 그것은 원형적 사랑을 위한 몸부림이고 그것의 변형된 사랑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전의 것들을 다 잊고 새로 만나고 거기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하다. 그 사랑을 만났던 시기의 독특함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가 너무 특별해서일 수도 있고 그걸 놓을 수 없는 자신의 집착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미하엘이 너무 고독해 보였다. 어린 미하엘도 젊은 미하엘도 늙은 미하엘도 너무 고독해 보여서 영화를 덮고 나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불구가 되면 평생 다리를 절거나 몸의 어딘가를 못 쓰는 것처럼 강렬한 사랑이 남긴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하엘. 어린 미하엘의 순수하고도 빛나던 사랑. 어쩌면 한나는 자신의 문맹과 단순함으로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그 대열에 미하엘이 섞여 있었던 것일 지도. 한나가 유대인 학살과 깊이 연루된 인물이었다는 것이 젊은 청년 미하엘에게 남긴 역사적 상흔 또한 대단한 것일 터. 그래서 쉽게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답장을 하지 못했으리라.

 더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고 생각해 봐야겠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법학자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이 소설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이 작품은 39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책 속의 한나와 미하일의 내밀한 감정과 스토리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면서 그들의 사랑의 실체를 꼼꼼히 살펴보고 싶다. 

 

3. 기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2009년)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 데이비드 크로스 외

러닝 타임 : 123분

 

# 어린 미하일을 연기했던 데이비드 크로스는 촬영 당시 15세였기에 한나와의 베드신 촬영을 위해 18세 성년이 될 때까지 무려 3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의 순수하고 맑은 표정, 사랑에 빠진 어리숙한 소년의 모습이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둘의 베드신 또한 선정적이지 않고 아름답고 고혹적이었다. 나이 든 미하일 역을 맡은 랄프 파인즈의 고독하고 쓸쓸하고 담백한 표정도 무척 좋았다.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영혼의 수수함을 잘 표현해 주었다. 오스카상 수상에 빛나는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녀가 연기한 그 단순하고 무지하면서 꼿꼿한 한 인간의 초상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녀 역시 시대의 희생양이다. 그녀의 자살이 그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무지. 그렇지만 그 곁에는 사랑을 놓을 수 없는 한 소년이 늙은 얼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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