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테이블에 앉아 그들 모두는 각자의 사랑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들의 얼굴은 '클로즈업' 된다.
1. 영화 <더 테이블> - 내용
어느 하루, 작은 카페의 한 테이블을 거쳐간 네 팀의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사연이 네 개의 에피소드에 담긴 이 영화는 마치 네 개의 퍼즐로 만들어진 사랑 이야기와도 같다. 각각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와 겹쳐지지 않고 독립적이지만, 소소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영화의 차분하고 아름답고 독창적인 분위기와 결을 이룬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유진과 창석의 이야기. 여배우인 유진은 전 연인이었던 창석과 만난다. 둘은 한 때 사랑했던 사이였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전 연인을 만나기 위해 스타배우인 유진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용감하게 그 테이블 앞에 앉아 있지만 창석은 유진과 관련된 찌라시 얘기를 꺼내고 sns에 올릴 인증샷을 찍고 심지어는 골목에 직장 동료들까지 숨겨 놓고 나와 있다. 유진은 간간이 창석에게 너무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둘의 재회는 서로 맞지 않음을 확인하는 씁쓸한 감정으로 끝나는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경진과 민호의 만남. 유럽 여행을 다녀온 민호와의 만남에 뭔가 껄끄러운 듯 보이는 경진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마음이 풀어진다. 둘은 진지한 만남을 몇 번 가졌지만 민호가 여행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었다. 그러나 민호가 경진이 생각날 때마다 샀다는 기념품들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경진의 표정에 조금씩 온기가 돌고 카페를 나설 때쯤 둘은 그간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한다.
세 번 째는 은희와 숙자다. 숙자는 은희의 결혼식에서 엄마 역할을 맡기 위해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다. 은희와 숙자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준비할 것들에 대해 의논한다. 사는 곳, 가족관계, 식장에서 입을 옷 등등. 그러다 문득 은희의 결혼식 날짜가 숙자가 사고로 먼저 보낸 딸의 결혼 날짜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둘의 마음이 열리고 서로의 진심에 대해 털어놓는다. 은희는 이 결혼이 사기로 시작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결혼이라고 말하고, 숙자는 딸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은희를 축복해 주고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네 번째 커플은 혜경과 운철이다. 결혼을 앞둔 혜경은 연인이었던 운철을 만난다. 혜경은 약혼자가 해외에 있는 동안 자기와 예전처럼 만날 것을 제안하지만 운철은 거절한다. 혜경과 운철은 서로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한 채 카페를 나선다. 그들이 카페를 나섰을 땐 밤이고 이제 카페는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2. 감상평
영화 <더 테이블>은 긴박한 구성이나 특별한 서사나 기승전결 등은 없다. 그렇지만 카페의 한 테이블에 앉은 네 팀의 잔잔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소박하고 잔잔한 느낌이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시종 롱테이크로 둘의 대화를 들려주고 배우들의 얼굴은 클로즈업된다. 덕분에 그들의 얼굴 잔근육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서로에게서 마음이 떠난 연인들이 나누는 시시껄렁하면서 핀트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 그것들이 오갈 때의 실망감 어린 표정들.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커플이 상대의 진심을 알아갈 때 밝아지는 표정들. 비즈니스로 만났지만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지는 여배우의 섬세한 연기. 결혼을 앞뒀지만 전연인을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의 밀당과 솔직한 대사. 그리고 사랑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보여주는 이 영화의 정적인 카메라 워크 속에서 관객은 이상하게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배경이 조용한 카페여서 복작거리는 인간군상들이 나오지 않고 특별한 서사 없이 대화로만 이어지는 전개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누군가의 일상을 잠시 엿보고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듯한 인상이다.
저런 카페가 동네에 있다면 아주 오래된 옛 친구를 불러내어 전에는 하지 못했던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나누어도 괜찮겠다 싶다. 소박하고 아담하고 정갈한 테이블. 그 위 꽃병에 꽂힌 하얀 꽃. 거기 앉으면 누구와 어떤 이야기도 다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역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동물인 것 같다.
테이블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다. 그건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적당한 단절과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테이블이 가운데에 놓여 있어야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가 가능하고 솔직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쌀쌀맞고 냉정하고 정중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우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그들의 내면엔 사랑 때문에 겪는 파고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나간 사랑, 다가올 사랑, 떠나간 사랑 등등에 대해 그들은 아주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작고 나직한 사랑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잔잔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런 노래 말이다. 그들 각자의 사랑 노래를 들었다.
3. 기타
더 테이블 (2017년)
감독 : 김종관
출연 :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김혜옥 외
러닝타임 : 70분
## 이 영화가 러닝 타임이 길지가 않고 4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보니, 하나의 사연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진 않는다.그렇지만 함축적이고 의미 있는 대사들이 있어서 두고두고 생각나게 한다.
" 나 많이 변했어."
"시계 봤을 때 선물하고 싶었거든요."
"우리 느림보 거북이 잘 좀 부탁드려요. 그래도 제가 애지중지 키웠으니까요."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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