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 주연 정유미 이선균. 감독 유재선.
2023. 09. 06 개봉 러닝타임 94분
15세 이상 관람가 미스터리
신혼부부인 수진 (정유미)과 현수 (이선균)은 이제 막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알콩달콩 사는 커플이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현수가 심각한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진다. 둘은 병원을 찾아가 약을 처방받고 양질의 수면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수의 기행은 점점 더 심해진다. 현수는 램수면 장애라는 진단을 받는데, 이 병의 증상은 본인이 자는 동안에 하는 행동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수는 자다가 일어나 냉장고의 음식을 먹어치우고 심지어는 마룻바닥에 소변을 보고 키우던 강아지에게 해코지까지 한다. 남편의 증상이 날로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수진은 서로 마음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끝까지 남편과 함께 있고자 한다.
수진은 힘든 와중에 출산을 했고 퇴원을 했지만 남편 때문에 점점 불안해지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깊은 잠은커녕 쪽잠도 이루지 못하게 되고 불길한 악몽을 꾼다. 그러는 와중에 수진의 엄마가 집으로 점쟁이를 데려오는데 남자 귀신이 원한을 품고 수진을 따라 들어와 있다는 말을 한다. 수진은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남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sns를 뒤져보지만 그들 가운데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겪고 있던 아랫층 집에 방문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 집에 먼저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죽었고 지금 들어와 사는 여자가 그 할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진은 이미 너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고 몸도 지쳐 있었기에 그 할아버지가 수진을 따라 집에 들어온 귀신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귀신이 남편에게 붙은 것이고 죽은 지 100일이 되기 전에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 이후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이까지 돌보던 수진의 강박과 점쟁이의 확언과 친정 엄마의 믿음이 삼박자를 이루어 점점 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간다.
수진의 눈에 남편은 아랫층에서 죽은 할아버지 귀신이 붙은 존재이고 물리쳐야 할 적이다. 그러지 않으면 갓 태어난 아이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결말이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흐르긴 하지만 이 부부가 서로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애썼던 지점이 꽤나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서 결국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역시나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인가? 깊은 잠을 잔다는 건 그만큼 인간의 일상에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진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면서부터였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간밤에 현수가 무슨 기행을 저지르지 않는지 지켜보려다가 밤을 새우면서부터 그녀의 이성은 마비된다.
현수는 병원에서 처방약을 바꾸고부터 램 수면 장애가 치유되고 잠의 질이 높아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집에 오지만 수진은 그를 믿지 못한다. 둘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현수는 의학으로 수면장애를 치료했고 수진은 샤머니즘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 지점에서 둘 사이의 균열이 발생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누군가 확언으로 부정적인 의식을 주입시킨다면 누구라도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 있다.
영화가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평들을 보았지만 이 영화는 그럴 만큼 여러 복선과 장치를 깔아놓은 복잡한 구조는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은 '잠'의 부족에서 기인된 사건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친정 엄마 역으로 나온 배우 캐릭터가 수진의 변화에 필연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개연성을 확보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정유미와 이선균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그 외의 조연들의 캐릭터 개연성과 연기 디테일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감독이 봉준호 키드라고 들었는데 다음 영화에서는 더욱 노련해지리라는 생각이다.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고 하니 세계 무대에서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잠'이라는 소재로 스릴러와 미스터리 영역까지 확장시킨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동안 가족들과 함께 '잠'을 즐겨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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