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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죽여주는 여자' 내용
소영은 탑골 공원 주변에 있는 노인들에게 성매매를 한다. 박카스를 뜯어 건네며 ' 연애하실래요?' '잘해드릴게요'라고 말하고 남성이 그에 응하면 근처의 모텔에 들어가서 관계를 하고 돈을 받는다. 젊은 시절 가정부일과 공장일을 하다가 동두천에서 양공주일을 했었던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는 여자로 통한다.
소영은 임질에 걸려 산부인과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민호라는 코피노 아이를 만나 집에 데려온다. 민호 엄마는 민호와 함께 필리핀에서 민호 아빠를 찾으러 왔다가 병원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구치소에 구금된다. 소영은 젊었을 때 흑인 병사와 살다가 낳은 자신의 아이를 미국에 입양 보낸 기억 때문에 민호의 일이 남 일 같지 않고 당분간 그 아이를 데리고 지내리라 마음먹는다. 소영이 사는 집에는 다리를 잃은 장애인인 피규어 작가 도훈이 있고 트랜스젠더 가수인 티나가 있다. 그들도 소영이 데리고 온 민호를 틈틈이 따뜻하게 돌보아 준다.
그러던 중 소영은 자신의 단골이었던 노인 세비로 송이 중풍으로 쓰러져 있는 병원에 문안을 간다. 세비로 송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다면서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소영은 살충제를 사다가 그의 입에 넣어주어 죽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소영에게 들은 또 다른 단골 재우 영감은 소영을 치매를 앓고 있는 종수 영감에게 데려간다. 종수도 소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셋은 함께 산에 오른 뒤 소영이 종수를 벼랑에서 밀어버리는 식으로 죽게 만든다. 드디어는 재우 영감까지 죽고 싶다며 호텔에서 수면제와 술을 마신다. 소영에게는 옆에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이런 식으로 소영은 세 노인의 죽음을 돕는다. 그야말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 것이다. 노인들은 자신의 질병과 고독과 빈곤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조력자로 소영에게 기댄다.
재우의 죽음까지 도운 소영은 재우가 남긴 돈의 일부를 들고 민호, 도훈, 티나와 함께 임진각으로 놀러 간다. 하지만 그들이 들른 식당의 티비 화면에서는 재우를 살해한 여성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소영은 티나가 노래하는 술집에 들렀다가 체포된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소영의 시신이 무연고 처리되어 있는 화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 감상평
과연 몇 퍼센트의 노인들이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을까? 아무리 준비가 잘 되었다 한들 누구도 마지막을 장담할 순 없을 것이다.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노후라 할지라도 질병과 외로움에서까지 완벽하게 멀어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노후라는 것은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빈곤함의 상태라는 말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소영은 자식이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지만, 세비로 송은 돈이 있는 대신에 자식이 멀리 있고 몸이 아프다. 재우는 먹고살만한 일과 체력이 아직 있지만 아내와 사별했고 정신적으로 외롭다. 종수는 형편도 어렵고 치매가 있으며 혼자 살고 있다. 이렇게 노인들에겐 인생의 남은 시기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기엔 역부족이다 싶을 만큼의 어려움이 각자 충분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노년이라는 시기의 복합적 상태이다.
소영은 성적인 파트너가 없는 노인들의 파트너 역할을 해주던 '죽여주는 여자'였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의 외롭고 비참하고 슬픈 노년을 마감해주는 진짜 '죽여주는 여자'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들의 비참함과 외로움에 대한 너무 깊은 공감에서 시작된 역할 분담이었을까. 아니면 소영이 형사들에게 잡혀가면서 하는 혼잣말처럼 교도소에서는 재워주고 먹여주니 '양로원에 갈 형편도 안 됐는데 잘됐' 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자식도 없고 돈도 없고 노년을 책임져 줄 아무 연고도 없던 소영은, 아니 미숙( 소영은 양공주 시절의 가명이고 그녀의 본명은 미숙이다) 은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에는 소영과 같은 노인빈곤층 말고도 이 사회의 약자라 불릴 만한 다른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소영과 같은 집에서 거주하는 도훈은 다리 한쪽을 잃은 장애인이고 밤무대 가수 티 나는 트랜스젠더이다. 소영이 단박에 마음을 뺏겨 집으로 데리고 온 아이 민호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소영이 공원에서 작업을 걸던 남자의 부인은 소영과 지난날 미군부대에서 함께 일하던 해피(복희)였다. 복희 그녀만이 소영의 진짜 이름 미숙을 알고 있다. 소영은 민호에게 치킨을 사주기 위해 들른 가게에서 혼혈 미군을 보고 자신이 입양 보낸 아들을 떠올린다. 이들 모두 이 사회의 약자이며 빈곤층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양육비를 보내지 않은 민호의 생부도 어쩌면 이 사회의 정신적인 빈곤층이다.
이 가난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병든 사람들. 이들은 우리에게 곧 닥칠 미래의 우리 모습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눈길을 거둘 수가 없고 이 우울하고 심란한 영상에서 마음을 온전히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인지도.
소영이 민호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밥상을 차려주던 장면만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따스하게 기억되는 장면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밥상이 있다. 먹고살아야 하는 신산한 삶이지만 누군가에게 밥을 차려주고 숟가락을 들게 하는 삶이라면 그것이 어떤 삶이든 박수받고 응원받아야 하지 않을까. 소영이 누군가에게는 '죽여주는 여자'였지만 저 어린 민호에게는 '살려주는 여자'였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소영의 영전에 예쁜 국화꽃 한 송이를 따뜻하게 차려주고 싶다.
3. 기타
죽여주는 여자 (2016)
감독 : 이재용
출연 :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외
러닝타임 :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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